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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베트남 주재원

베트남인의 시간 개념과 느긋함 이해하기

by 마미블리 2025. 4. 24.

베트남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어요.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새롭고, 때론 당황스럽고, 때론 웃기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이라면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문화 차이가 바로 시간 개념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오늘은 제가 직접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베트남 사람들의 느긋한 시간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었는지를 공유해볼게요.

 

1. “시간 좀 늦어도 괜찮아요~”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약속 시간에 대한 여유로운 태도였어요.


예를 들어 10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한국에서는 10시 정각 혹은 5~10분 전까지 도착하는 게 예의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10시 약속이면 10시 15분, 심하면 10시 30분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도착하곤 해요.

처음엔 "이거 무시당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속이 답답했죠. 그런데 이게 개인에 대한 무례함이나 무성의함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엔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베트남 사람들에게 시간은 '절대적인 약속'이라기보다는,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개념에 더 가까워요. 중요한 건 시간 자체보다, 만나는 그 순간의 분위기와 관계라는 거죠.

 

2. 행사, 회의도 ‘대~충 느긋하게’

 

회사에서 현지 직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회의 시작 시간이 늦춰지는 경우가 많아요.
9시에 회의 예정이면, 9시 10분부터 하나둘 모여 앉고, 9시 20분쯤 슬슬 회의가 시작되는 식이에요. 한국식으로 정각에 진행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급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죠.

행사나 세미나도 마찬가지예요. 2시 시작이면 2시 반부터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사회자도 미소를 지으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말해요. 이게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이럴 땐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물 한 잔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 내가 늦은 게 아니라, 이곳의 시간이 늦게 흐르는 거라는 걸 받아들이면 훨씬 편해져요.

 

3. 배달도, 수리도, 공사도... 천천히 와요.

 

요즘은 Grab, ShopeeFood 같은 배달 앱이 잘 되어 있어서 꽤 빨라졌지만, 여전히 음식이 늦게 도착하거나, 아예 잘못 오기도 해요. 그럴 땐 한국처럼 바로 항의하면 오히려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조금 늦었어요, 하지만 괜찮죠?”라는 식의 응대가 흔해서, 조금 늦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는 문화가 깔려 있어요. 한국인 입장에서는 처음엔 참을성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이 여유로움이 참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에어컨 수리 같은 경우도 오늘 온다더니 내일 오고, 내일 온다더니 모레 오는 경우도 있어요. 급한 일이면 여러 번 확인 전화를 하고, 되도록이면 “정확한 시간”보다는 “오늘 중에 올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 더 실효성이 있어요.

 

4. 느긋함 속에도 ‘배려’가 있다.

 

처음엔 이 느긋함이 비효율적으로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크다는 걸요.

누군가 늦었다고 다그치기보다는, "괜찮아요, 천천히 와요"라고 말하는 게 서로의 평화를 지키는 방식인 거죠.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느긋함을 이해하게 되면, 나도 언젠가는 느긋해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더라고요.

이런 여유는 삶을 좀 더 길게 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높여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율은 필요해요.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느긋하게만 받아들일 순 없죠. 특히 회사 업무나 중요한 계약, 고객 응대 등은 한국식 정시 문화가 필요할 때도 있어요.

이럴 땐 사전에 충분히 강조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면:

“꼭 9시 정각에 시작해야 합니다. 외부 손님이 오세요.”
“이건 마감 기한이 중요하니, ○일까지 꼭 부탁드려요.”

이렇게 미리 충분히 설명하고, 그 이유를 부드럽게 말하면 대부분은 이해하고 맞춰주려 해요.

그리고 가능하면 중요한 일정을 하루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안전해요. “내일 3시 회의 잊지 않으셨죠?” 하고 리마인드 메시지를 보내면 훨씬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답니다.

 

6. 나만의 여유 찾기

 

처음엔 조급했던 제 마음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누군가 늦게 와도 “음~ 나도 커피 한잔 더 마시지 뭐~” 하면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느긋한 리듬에 맞춰 걷는 게 익숙해졌어요.

베트남의 시간은 마치 강처럼 흘러요. 급하게 흘러가지 않지만, 결국 제 갈 길을 가고 있어요. 우리도 그 흐름에 잠시 몸을 맡겨보면 어때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여유롭고, 따뜻한 시간들이 펼쳐질 거예요.

 


 

베트남에서의 느긋한 시간 개념은,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그 속에 담긴 여유와 배려를 이해하게 되면 정말 매력적인 문화예요. 한국인의 성실함과 베트남인의 여유로움이 잘 어우러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더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혹시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셨다면,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한 번 건네보세요. 베트남에서는 그게 자연스럽고, 또 따뜻한 인사니까요.